"어차피 게임이 안되요. 전에도 그랬어요."
반복. 게임은 계속되는 것인가? 일상의 단면으로서의 반복은 영화 곳곳에 깔린다. 원상은 내경을 버리고 그녀를 채갔던 윤식(편집장)밑에서 일을 한다. 그러한 원상의 심리는 묘한 곳이 있다. 여자를 사이에 둔 원상과 윤식의 삼각관계는 성연을 통해 반복된다. 하지만 결과는 같다. 마누라한테도 잘하고 애인에게도 잘하면 된다는 식으로 유부남의 로맨스를 추구하는 윤식과, 애인도 지키지 못했고 성연도 잡지 못한 원상이 벌이는 삼각관계의 틀에 정말이지 역전은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질투는 연적에게 느끼는 감정이 아닌 자신이 갖지 못한 모든 것에서 비롯하는 무엇인 마냥 그것의 승리는 애당초 의미가 없었다. 둘 사이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닮아갈수록 로맨스는 한낱 게임에 불과한 것이 된다. 두 여자를 사이에둔 감정, 이미 가진자를 바라보는 못가진 자의 질투는 단지 공유된 경험으로 전락하고 그것의 무게는 일상의 차원에서 가벼움으로 침전한다. 단지 그것은 어차피 안될 '게임'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인간감정은 묘하게 전이되는 속성을 지닌다. 내경도 잃었고 성연에게 애걸하던 일도 헛일이었다. 성연에 대한 마음을 접은 순간 그것은 하숙집 딸에게 향한다. 욕망에 의해 매개되는 관계에 로맨스가 어디 있단 말인가? 빈껍데기 사랑에 삶을 바쳐야할 책임감 혹은 의무감 따위는 간단한 문제다. 윤식의 충고를 듣고 원상은 그녀를 버린다. 그렇게 윤식이 추구하는 빈껍데기 로맨스의 길을 원상도 걸어가는 것이다. 관객은 일상의 차원에서 반복된 관계의 양상, 혹은 그것을 좆던 카메라 논리를 통해 윤식의 딸과 원상 사이에 벌어지게 될 일들을 암시받는다.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남은 건 우리의 일상에서 욕망에 덧씌워진 로맨스라는 하찮은 포장을 발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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